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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지문]성궤는 왜 숨어버렸을까? (3부~6부)

니코데무스 2020. 4. 5. 23:37

여기서 잠시 2부에서 소개되었던 악숨제국의 모습을 살펴본다. BC1000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악숨제국의 수도 악숨에는 미스테리한 오벨리스크들이 세워져 있다. 그 중에는 비록 쓰러져 버리긴 했어도 약 500톤 정도의 단일 암석으로 만들어진 구조물도 있는데 고대세계의 건축물 중에는 단연 최고라고 한다. 2부에서도 언급했던 Zamani Project여서 악숨제국의 모습 역시 3D로 제공을 하고 있다. 오벨리스크 중 하나는 이탈리아에서 빼앗아 갔다가 2004년에야 반환 되기도 했다. 송가이 제국, 쿠시 제국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크게 세력을 떨친 세개의 나라로 손꼽히는 악숨 제국은, 3세기경에는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4개의 세력으로 로마, 페르시아, 중국(당시엔 삼국지로 유명한 위촉오의 3국시대)과 함께 그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할 정도로 무시 못할 영향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https://www.zamaniproject.org/site-ethiopia-aksum-stelae-field.html

 

Site - Aksum Obelisk

Funders > Andrew W. Mellon Foundation > World Monument Found (WMF) 

www.zamaniproject.org

 

 

3부 미궁

스코틀랜드 기사단의 제임스 부르스가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것은 바로 언약궤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1990년 8월에는 이미 여러가지 발견한 물건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에티오피아를 방문할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1989년 5월 19일 에티오피아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였고, 많은 수의 군수뇌부가 사살당하여 군이 역할을 다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티그레 인민해방전선과의 전투에서 계속 패배하게 되었다. 후일 에티오피아 북부지역에 에리트레아라는 독립국가가 탄생하게 된다.(1993년 5월 24일. 최근 COVID-19의 팬데믹선언을 뭉개어 지탄을 받고 있는 WHO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이 이 곳 출신임)

1989년 9월에는 랄리벨라가 티그레 인민해방전선이 침략 당하였고, 곤다르 주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악숨은 이미 장악된 상태였다. 그 해 여름,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 영국으로 파견한 셀라시에 사제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를 통해 아직도 성스러운 유물인 언약궤가 에티오피아에 존재하고 있으며, 놀라운 권능을 계속 발휘하고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였으며, 커다란 폭력과 소요의 시기에는 언약궤가 악숨을 벗어나 다른 곳에 감추어져 있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아드와 전투(Battle of Adwa) : 한니발의 시대 이후 아프리카 군이 유럽 군을 이긴 가장 주목할 만한 승리

셀라시에 사제장은 아드와 전투에서 언약궤가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아드와 전투가 무엇이었는지, 또 에티오피가 어떻게 이기게 되었는지 에 대한 다른 견해를 담은 동영상을 소개해 보자면...

https://youtu.be/1Hln0GjuUQk

이 동영상에 나오는 아드와 전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에티오피아의 근현대 역사는 물론, 19세기 이탈리아의 통일의 역사도 알고 있어야 하겠지만, 역알못들은 자막을 켜고 한글자막으로 변환한 후 마음을 비우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참고로 에티오피아는 당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 처럼 구미열강들의 식민지 개척시대에 힘겹게 저항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며, 이탈리아는 르네상스를 시작한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공국이나 무역으로 유명해진 베네치아공국 등의 도시국가들의 시대를 지나 나폴레옹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독립하며 통일된 나라로 막 시작하던 시기였다.

"한니발의 시대 이후 아프리카 군이 유럽 군을 이긴 가장 주목할 만한 승리"라는 다소 자극적인 미사여구가 뒤따르지만 실상은 전쟁의 준비도 부족한데다 자만하기까지 했던 이탈리아군이 숫적으로도 우세하며 승리에의 의지까지 불탔던 메넬리크 2세가 이끄는 에티오피아 군에게 패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도 있다. 당시의 승리를 기억하는 몇몇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 옛날 여리고성의 승리를 가져다 준 "언약궤"가 함께 했다고 믿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제2차 아드와 전투는 아이성 전투(여리고성 함락 이후에 있었던 전투)에서와 같은 패배를 경험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언약궤는 이유야 어떻든 아무런 권능도 발휘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역사에도 여러번의 전란이 있었다. 10세기 구디트여왕의 봉기가 있었고, 16세기에는 이슬람국가의 대규모 침공이 있었는데, 이때마다 언약궤는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가야했으며 주로 호수 부근의 외진 곳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언약궤가 처음 예루살렘에서 에티오피아로 전래되었을 때 그 이동경로는 나일강을 하류에서 부터 거슬러 올라오다 즈와이 호수의 데브라 시온이라는 곳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이는 파르지팔에서 신비한 성배 성전은 호수 위에 있었다는 표현과도 유사하게 보이며, 공교롭게도 호수 주위에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 등 오래된 유대교의 전통들이 다수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전통이 바로 팀카트라고 하는 전통행사이다. 매년 1월 18~19일에 진행된다. 1770년에는 스코틀랜드 기사단의 제임스 브루스가 악숨의 팀카트 행사에 참석했었으며, 저자는 1990년 타나호수의 곤다르에서 거행된 행사에 참석을 하였다.

오벧에돔의 집에 모셔져있던 언약궤를 성으로 모셔오던 날 다윗이 춤을 추던 장면이 사무엘하서에 기록되어 있다. (삼하 6:14~16) 팀카트행사는 어쩌면 다윗 시대의 그 이미지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6년 랄리벨라에서 거행되었던 팀카트행사의 영상이다.

https://youtu.be/b6NTxJ2lUIU

4부 가공할 기계

이후 저자는 모세가 십계명의 돌판을 담아두기 위하여 언약궤를 제작한 BC1250년 경을 중심으로 언약궤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여기서 부터는 저자가 매우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집트 고대문화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추리를 이어가고 있는데, 언약궤를 인간의 발명품이자 인간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즉, 전형적인 유사과학의 시야로 언약궤를 바라보고 있다. (상세 내용은 생략함)

5부 영광은 어디에? / 6부 황무지

솔로몬이 지은 성전(BC 10C)의 지성소에 언약궤를 모셨을때, 지성소 바닥을 이루는 곳은 "세티야(Even ha-Shtiyya, 세상의 초석)"라고 불리는 큰 바위였다고 한다. 이후 BC 587년 바빌론에 의해 성전이 한 번 파괴된 후, BC 537년 고레스왕의 칙령에 따라 귀향한 유대인들(에스라, 느헤미야서)에 의해 제2성전이 재건 되었지만,  AD 70년 로마에 의해 다시 파괴되고, AD 1137년 이슬람 세력에 의해 바위의 돔이 세워지는 그 모든 일이 세티야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오랜 세월동안 언약궤는 바로 그 세티야의 아래에 감추어졌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AD 11C 템플기사단은 세티야의 바로 아래에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를 언약궤를 찾으러 예루살렘에 왔지만 실패를 한 것으로 보이며, 대신 망명을 온 랄리벨라 왕자를 통해 에티오피아에 언약궤가 있을 가능성을 알게 된다. 이어 랄리벨라 왕자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떠난 템플기사단은 암굴교회등을 지으며 언약궤의 존재를 확인 후 탈취할 기회만 엿보고 있던 중, 그 계획을 눈치 챈 랄리벨라 왕자가 교황에게 요청을 하고, 결국 템플기사단은 강제로 해산당하게 된 것으로 저자는 추측하고 있다.

한편, 언약궤가 처음 솔로몬 성전에 모셔진 이후 성서의 기록에만 크게 3차례의 침공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세번 모두 언약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1) 시삭 :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왕상 14:25~26, BC926)

2) 요아스 : ...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왕하 12:18, BC 796)

3) 느부갓네살 :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왕하 24:13, BC 598)

언약궤는 이미 솔로몬의 성전으로 부터 자취를 감추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성서의 어디에도 그 이야기는 쓰여있지 않았고, 심지어 옛날부터 계속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것 처럼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1)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 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 채가 길므로 채 끝이 내소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 곳에 있으며 (왕상 8:6~8)

2) (요시야)왕이 제사장들에게 그들의 직분을 맡기고 격려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게 하고 / 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 (대하 35:2~3)

앞뒤의 문맥에 비해 더욱 강조하는 듯한 이 표현은 마치 언약궤의 부재를 숨기기 위함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예레미야는 언약궤가 미래에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차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야훼의 말씀을 남기기도 하였다.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렘3:16)

저자는 요시야왕의 할아버지인 므낫세왕의 악행이 극에 달하던 시절, 일부 뜻 있는 제사장들에 의해 '어디엔가로' 감추어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과연 언약궤는 지금의 에티오피아 악숨에 잘 보관되어 있을까? 과거 독재정권의 홍보자료를 작성했던 이력 때문에 티그레 반군에게는 위협을 당할 지도 모를 상황 속에서 저자는 티그레 반군의 영향 아래에 있던 악숨의 팀카트 축제에 목숨을 걸고 1991년 1월에 다시 방문을 하게 된다.

예상되는 대로 언약궤를 직접 볼 수도, 존재를 확인할 수 도 없이 저자의 추적은 끝이 나버렸다. 과연 언약궤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