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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건의 신학이야기] 6장 구원론 본문
글 저장 장소를 아래로 옮겼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교회에서 진행중인 성경공부(BTBS, Big Tree Bible School) 과정의 가을학기에 신학 강좌가 개설되었고 매 주 묵직하면서도 달콤한 수업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다루어진 내용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내용들을 되새김하거나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들에 대한 제 개인 생각들을 남겨보고자 합니다. (개인 생각이므로 신학적 오류 또는 읽는 분의 생각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6장 구원론"을 다루었습니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24 죄와 구원
25 인간: 운명과 미래
26 세례: 실족 --- 회복
27 거듭남: 중생과 성화
28 구원과 예정
아마도 초급자 대상 성경공부의 90%는 첫 내용으로 "구원의 확신"을 다루지 않을까 합니다. 제 오래 전 기억을 되새겨보자면... 유년주일학교를 졸업하고 중등부에 올라오니 토요오후집회가 있었고 고등부 선배들이 소그룹 단위로 후배들에게 성경공부를 시켜주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그 첫번째 교재의 이름이 "구원의 확신"이었던 것 같았고, 첫 장의 내용에 아래와 같이 예수님이 내 안 혹은 밖에 계신 사람, 그리고 내 안예 계셔도 내가 중심인지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어디에 속해 있는지 고백해 보라는 선배의 따뜻한 강요도 받았었겠지요? ㅎ)
교회 좀 다녀본 분 중 이 그림 모르는 분 별로 없으시죠?
교재에서는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다루어지는 죄나 구원에 대한 정의를 한 단계 넘어서서, 예수님은 '죄'를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구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고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지난 수업시간에는 교재에는 없는 칼뱅의 5대강령과 이에 대비되는 아르미니언 5대강령에 대해서도 추가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먼저, 칼뱅주의 5대 강령은 아래와 같습니다.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 <특별한 구속(救贖)> (Limited Atonement)
저항할 수 없는 은총 (Irresistable Grace)
성도의 견인(堅忍) (Perseverance of Saints)
첫글자만 따서 TULIP이라고 한다죠? 예쁜 이름과는 달리 완전히 이해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ㅜ.ㅜ
이에 대해 아르미니언 5대 강령은
자연적 무능력 (Natural Inability)
조건적 선택 (Conditional Election)
보편 속죄 (Unlimited Atonement)
저항할 수 있는 은총 (Resistable Grace)
조건적 견인(堅忍) (Conditional Perseverance)
시기적으로는 네덜란드의 신학자인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가 하나님의 절대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역할이 필요하는 이론인 예지예정론(豫知豫定論)을 주장하고 나서자, 칼뱅의 이론을 지지하는 쪽에서 5대강령(TULIP)을 정립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시겠다구요? 신학생이 아닌 다음에야 위의 이론을 암기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설명 가능할 만큼 이해하고 있을 필요야 없겠지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겠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취사선택을 하는 것은 진정한 잘못입니다. 윤리적 추진력은 없으면서, 성결을 위한 노력은 없이 구원에 대한 확신과 고백만 남아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옥행 급행열차(*) 가 아닐까 합니다.
(*) 영화 '다찌마와 리'의 대사에서 인용
이쯤되면, 내가 구원 받았는지를 확신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지금의 확신이 정말로 확실한 것인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교재에서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죄'와 '구원'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구원'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확신 이라는 것은, 내 육신이 죽으면 내 영혼이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는 것(특히나 비기독교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을 확신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고 하나님 뜻 대로 살고 또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하나님나라' 라는 것을 확신하는 문제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지난 성경공부 시간에는, 일반교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도 있지만 교회사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어지는 내용들을 다루다보니 설명만 듣고 끝나버린 감이 없지 않습니다. 만약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구원'의 개념이 개인의 확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동체에는 어떻게 확대되고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까지 다루어 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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