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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조와(弔蛙)

니코데무스 2020. 3. 2. 22:42

김교신 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은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지만 어떤 분이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그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그는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신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사요 평신도였습니다. 그러나 성서조선을 통한 김교신 선생의 신앙은 당시의 신앙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가진 기독교적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평전을 쓴 김정환님은 <민족적, 민중적, 토착적> 세 단어로 정의합니다. ..."

그를 알고자했던 마음이 거의 없었던 나의 책임이 가장 컸겠지만, 나에게 그를 소개해 준 이 역시 없었습니다. 만약 그 이유가 그가 목사도 신학자도 아닌 평신도였기 때문이었을까요?

김교신이 끝까지 거부했던 것이 바로 조선교회의 "교회주의"였기 때문에 조선의 교회를 그를 불편해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목사도 아니니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이 그를 굳이 소개해 줄 이유도 없었던 것 이었을까요?

조선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조와(弔蛙)"  개구리의 죽음을 애도 하면서도 미처 죽지않고 살아남은 두어마리의 개구리를 보며 살아남지 못함을 슬퍼하기보다 살아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를 소망하며 지었을 시.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다. 층층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연못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가 연못 속에서 솟아나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마련해 준 성전이다.

이 반석 위에서 때로는 가늘게 때로는 크게 기도하고 간구하고 찬송하다 보면, 전후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연못 속에서 바위의 색깔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 속에 큰일이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새로 온 손님에게 접근하는 친구 개구리들. 때로는 5,6 마리, 때로는 7, 8마리.

늦가을도 지나서 연못 위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하더니 개구리들의 움직임이 날로 날로 느려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연못의 투명함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고막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소식이 막힌 지 무릇 수개월 남짓!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얼음 덩어리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연못 속을 구부려 찾아보았더니 오호라, 개구리 시체 두세 마리가 연못 꼬리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연못의 적은 물이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얼어 죽은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광복을 넉달 남기고 전염병에 의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여전히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가 3년여 힘들게 펴 냈다는 잡지 <성서조선>은 어떤 책이었을까? 궁금증만 더 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