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종교

[종려주일][새로운 느낌의 예배]

니코데무스 2013. 4. 2. 23:34

미국쪽 사무소에서는 그저께 저녁 일찌감치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미국은 연휴에 들어간다고... 다름아닌 부활절 연휴(Easter)

비 기독교인들에게는 성탄절이 기독교의 가장 유명한 절기로 기억될런지 몰라도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부활절의 의미를 놓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허 나, 그 부활절 직전의 3일간은 차마 몇 마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고, 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준비를 하기위하여 예수께서는 작은 나귀에 올라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지요. 당시의 풍경을 성서를 빌어 표현해 보자면,

[요12:12-13]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를 직접 따르는 사람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온 '큰 무리'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공 관복음의 다른 구절들을 보면 '큰 무리'와 '종려나무'라는 구체적인 표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가장 나중에 완성된 요한복음에서는 당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문학적 수사를 동원한 것으로도 보이며, 종려나무가 그 지역의 흔한 나무라는 점과 일년에 두어차례 나뭇잎들은 쳐 주어야(잎들이 워낙 길고 커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하는 점으로 봐서, 길 가에 쌓여 있던 종려나무 잎들을 즉석에서 손에 들고 환호하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카톨릭과 성공회 등은 부활절 직전 목요일 밤부터 성삼일(Sacrum triduum)이라고 하여 목:최후의 만찬, 금:십자가에서의 수난, 토:무덤에 누우심 을 기념하는 예전을 지내고, 마지막으로 부활주일(Easter)을 맞이합니다만, 개신교에서는 성삼일의 전례가 없다보니 부활절 일주일 전을 고난주간으로 섬기게 되었고, 따라서 종려주일까지 함께 기념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사순절이나 성삼일, 부활절은 모두 예수께서 당하셨던 고통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권능을 기념하기 위함이지만, 정작 이천여년전 삶의 고통 속에서 메시아만을 간절이 바라던 사람들이 비록 잠시나마 기대를 걸었던 나사렛 출신 청년 예수를 메시아라 믿고 환호하였던 그 사건. 인간들이 주인공이었던 종려나무 환호 사건에 대해서는 저 역시 그 동안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호하였던 사람들은 며칠 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때! 어디에 있었을까요? 나뭇가지 들고 환호하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며, 요즘 유행어인 '멘붕' 상태에 빠져 있었을까요? 그들의 환호가 구약에서 그토록 입이 닳도록 예언되었던 바로 그 사건이었다는 것을 끝내 모르고 삶을 마감했야만 했었을까요?

 

지난 주일엔 제가 지금까지 참여하였던 종려주일 예배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배 전 모두 밖에 모여 사진에서 처럼 종려나무 잎을 하나씩 받고나서 교회 주변을 한바퀴 도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비록 예수를 환호하던 당시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을 만큼의 이벤트도 아니었고, 또한 저 잎이 당시 예수께서 타신 나귀의 발 아래에 깔렸던 그 종려나무 잎과 동일한 종자는 아니라고 해도, 이천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사건을 기념하고 마음 속으로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행사에 참여하였다는 것 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이어 본 예배가 시작하면서, 예배당 안을 가득 채운 향이 또 다른 느낌을 주더군요.

동 방박사들이 가지고 왔던 경배 예물 중 하나가 바로 유향인데, 카톨릭 등 서구의 종교행사 뿐 아니라 동양 쪽에서도 종교예전 등 중요 행사때 태워서 그 향기를 피우는데 사용된다고 하는군요. 우리나라의 향은 장례나 제사 또는 사찰이 먼저 연상되는게 사실이지만, 지난 종려주일예배 때 경험했던 그 향은 마음 속 물결이 잔잔해지는 느낌마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예배 중 찬양대가 불렀던 Miserere Mei가 울려퍼지던 때 였습니다.

Gregorio Allegri가 시편51편을 가사로 지었다는 Miserere Mei(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전통적으로 로마교황청의 시스틴 성당에서 성금요일 저녁예배때 불리웠다고 하는데, 이 곡을 들은 교황청에서는 천상의 음악이라고 생각하여 교황청 밖에서의 연주 및 악보 반출도 철저히 금지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음악신동 모짜르트는 14살때 이 곡을 단 두번 듣고 악보를 그려냈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지요. 전체적인 멜로디는 단조로운 편이지만 그 느낌만큼은 정수리 부근에서 뭔가 시원한 물이 몸 가운데로 흘러드는 듯한 느낌이 들며, 또한 밧세바를 탐한 죄로 인해 울부짖던 다윗의 참회의 기도(시편51편) 내용까지 생각한다면 들을때 마다 다른 느낌이 들게하는 곡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곡을 실황연주^^로 듣게 되었네요. 일반적으로 교회 찬양대의 연주는 전문연주자들 보다는 느낌이 약한게 사실인데, 이번 만큼은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Miserere Mei @YouTube (If any problem below window, click left shortcut.)


야훼께 가장 사랑을 받았음에 틀림 없던 다윗 조차도 육신의 유혹에 쓰러져버릴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유한성, 그 유한성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아 오심을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기다리는 우리 인간들... 눈 앞에서 메시아라 여겨졌던 분이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보고 세상 무너진 듯 절망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인간들... 그러나 그런 우리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의 끝을 보여 주신 주님의 권능...

(오늘... 왠지... 이런 현학적인 표현이 나도 모르게... ^^)

 

내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날 입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예배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각자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예배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